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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내 생각

'보수'와 '진보'를 논하다가 삼천포 갔습니다!

요새, 보수와 진보를 말하면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시비 거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가 우리 사회를 둘로 가르는 주원인이라니까, 정확한 개념이 도대체 뭔지? 요새 유행하는 인공지능에 물어봤습니다.

인공지능 기계학습 데이터마이닝

'진보'란 '보수'의 반대말로써, 변화와 새로운 아이디어 및 다양성에 개방적인 사람을 말한다고 합니다. 동의어로는 '넓은 마음' '정통이나 전통적이지 않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등등... 마지막은 Radical (극단적 과격주의자?), 그건 너무 치우친 경우이니 빼면 진보가 그다지 나쁜 개념은 아닌 듯합니다.

 

그럼 '보수'는 뭐라고 구글 인공지능은 답할까요?

 

"전통, 권위, 안정, 질서 등을 중시하는 사상이나 이념으로써,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적인 변화나 혁신보다는 기존의 가치와 제도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가 보수 정당과 연관되어 사용된다며, 보수 정당의 목표가 국가의 안정과 질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 중시임을 알려줍니다. (흥미로운 건, 영어에서 '보수'는 단어 자체가 보수주의자를 뜻하기도 하기에 정치적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거죠. 따라서, 진보나 보수를 운운하면 정치적 시비로 받아들여지는 게 당연합니다, 하하!)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정치적 개념으로도, 보수나 진보 어느 쪽이든 나쁘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바라보는 방향과 나아가는 방법이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닌, 따라서 개인의 선택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왜 서로 싸우는 걸까요?

자기 걸 남에게 강요해서?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게 보수고, 개인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게 진보라니까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가면 아무 충돌이 없을 듯한데, 문제는 '사회적'에서 발생합니다. 사회란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럿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보수가 추구하는 사회적 안정과 질서는 구성 인원 모두가 참여해야지 이뤄집니다. 나는 따르는 데, 쟤가 안 따르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즉, 획일성 또한 필요한 데, 이게 진보가 추구한다는 다양성과 맞부딪힙니다.

 

사회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희생과 책임이 필요합니다. 안정된 사회의 유지에는 비용이 들어갑니다. 직업을 갖지 않고, 복지기금 받아 살겠다고 하고, 병역 의무 지는 걸 거부한다면,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이에게 불공평해집니다.

 

불공평하다고 지적하면, 너는 벤츠를 타는 데 나는 왜 버스를 타야 하나? 내가 번 돈, 내가 쓰는 거 좋아하네? 애당초, 출발이 달랐잖아. 금수저 물고 태어난 애를 흙수저가 어떻게 따라가냐며. 사회를 뜯어고친다고 나서기에, 사회의 안정이 물 건너갑니다. (예, 노동조합 시위, 광화문 집회)

타협과 양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포기하고 다른 이가 원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타협해서 양쪽이 다 중립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또한 말이 안 되고... 그래서 정치적 해결 방법은 네가 한번 하고 내가 한번 하고입니다. 보수가 정권 잡으면, 다음번에는 진보에서. 그렇게 서로 잘하는 거 한번 해 보고, 안되면 바꿉니다. 그걸 바로 민주 정치라고 부르죠. (아니라면 독재 정치가 되겠죠?)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맘에 안 든다고, 이민 가기는 어려우니까, 꾹 참고 견디다 보면 정권이 바뀝니다. (현실은 이상과 달리 그놈이 그놈인 게 문제긴 하지만, 사실 진보네 보수네! 다 선거할 때만 떠든다는 맹점이 있긴 합니다.)

국가보다 작은 사회는 어떤가요?

반면, 교회는 덩치가 작고 선택도 여럿이기에, 맘에 안 들면 다른 교회로 옮기면 됩니다. 하지만, 오래 다녀 정든 교회 떠나는 거 쉽지 않고, 그렇다고 개혁한다고 나서봐야 고쳐지기는커녕 쌈만 나니까 타협하고 양보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부모와 자식 간은 고사하고, 한 몸이라는 부부조차도 실은 하나가 아닌 둘입니다. 몇십 년, 살 부대끼며 살아왔고, 의견 다툼도 많이 해서 어느 정도 비슷해졌을 만도 하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다양성이 요구됩니다. 절대로, 획일적일 수 없습니다. 부부가 평온한 이유는 어느 한쪽이 자기 욕심을 버리고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어쩌면 져주고 양보하는 게 사랑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걸 같이 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걸 이뤄주면서 얻는 행복?

 

"내 욕심을 버리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어서, 우리 모두 살기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갑시다!" 이렇게 큰 주제를 떠들기는 너무 쉽습니다. 내가 해야 하는 분량보다 남더러 하라는 분량이 훨씬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신, 나의 행복이 아닌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서 난 얼마나 노력했나? 양심적으로 돌아보았습니다.

 

날 위해 모든 걸 주신 예수님이나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논하기는 너무 뻔뻔하니까 빼고, 내가 사는 나라를 위해?, 내가 사는 지역을 위해? 내가 다니는 교회를 위해서?

 

그것도 너무 크네요. 그렇다면, 내 가족을 위해서, 나는?

 

아내의 행복까지는 몰라도, 자식들에게만은 다 하지 않았냐는 생각이 아주 살짝 스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니까 그것도 진실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껏 만, 그것도 내 하고 싶은 한도 안에서 만이었으니까요.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이런 원대한 각오를 세우고 다시 시작하기는커녕, 지금도 잠시 산책하고 들어 오자는 아내의 말 못 들은 체하고 쓰던 블로그 글이나 계속 끝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걸 어이하나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정리한다고 시작한 글이 어찌 일로 왔을까 황당하지만, 거창한 주제 논하면서, 남한테 삶을 고치라고 조언은 아주 쉬운 데, 막상 내가 해야 하는 건 아주 작은 일조차도 하기가 어렵다는 고백으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