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6) 썸네일형 리스트형 물 위를 걸어 내 배에 오르신 분 광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은 찬송으로도, 설교로도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허 참... 그 사건 속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곧 복음의 본질이 이토록 선명하게 담겨 있다니요. '믿음 생활을 제대로'라는 제 블로그 주제와도 참 잘 어울리는 글 시작합니다.제자들은 가버나움으로 가려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 광풍이 불어,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저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을 찾아오십니다.“나다. 두려워하지 말라.”(요한복음 6:20)'나다(It is I)'는 단순한 자기소개를 넘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광풍을 이겨내라는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노력해라. 더 믿음을 키워라." 하시.. 내 신앙 생활의 열심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린다고요? (학개서) 우리는 종종 소위 ‘성도’, 곧 하나님께서 거룩한 존재라고 불러주신 교회 형제들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삶은 믿지 않는 이보다도 못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의 삶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점점 하나님 성품을 닮아간다고 했는데,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린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연약함이 워낙 커서 티가 나지 않는 것인지, 심지어 구원은 정말 받은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학개서의 이스라엘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학개서의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편안함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출발만큼은 누구보.. 앙꼬 없는 찐빵? 거룩안에 거룩이 없다니요? 잘못 번역된 용어: 성경의 '거룩'은 '신성함'이 아니다?한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거룩하게 살라”라는 권고는 종종 무거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삶을 유지하며, 늘 인자하고 숭고한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은 도덕적 완벽주의의 압박 때문입니다.그러나 원어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우리가 이해해 온 거룩함과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번역의 선택 하나가 우리의 믿음 생활을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습니다.1. 도덕적 완벽함인가, 소유의 잘라냄인가?우리가 사용하는 거룩과 한자 성화(聖化), 영어 Holy, 라틴어 Sanctus는 모두 어원적으로 “신성함, 도덕적 지고함, 결함 없는 온전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단어 자체가 이미 도덕적·윤리적 완전성을.. 나이가 들면 생기는 10가지 습관… 다들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나이가 들면서 슬며시 생기는 작은 습관들. 주변 사람들은 다 느끼지만… 예의상 말하지 않는 그 10가지.1️⃣ TV 볼륨이 점점 커진다 내겐 배경음인데, 가족들에겐 록 콘서트처럼 들림2️⃣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재미있어서 또 말하게 되는데, 듣는 사람은 이번 주에만 네 번 들었을 수도. 3️⃣ 말에 필터가 사라진다 생각과 말 사이의 벽이 얇아져서, 옷차림·속도·체형 같은 걸 솔직하게 말하게 됨. 4️⃣ 모든 걸 아껴 저장한다 고무줄, 신문, 테이크아웃 용기… “언젠가 쓸지도 몰라!” 5️⃣ 대화가 건강 이야기로 흐른다 병원, 약, 통증 업데이트가 자연스레 대화 주제가 됨. 6️⃣ 기술 변화를 거부한다 스마트폰 업데이트? “난 컴퓨터 안 해.” 도와주는 사람만 고생하는.. 인공지능한테 내 글의 신학적 타당성을 평가해 보라고 시켰습니다! 거룩해지려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이 이미 나의 거룩함 되심(히 10:10) 거룩해지려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이 이미 나의 거룩함 되심(히 10:10)— 성화라는 구원의 단계에서 벗어나, 복음의 생명으로 돌아가기믿음 생활에서 가장 부담되는 말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 ‘성화’ 아닐까요? “구원받았다면 성화의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biblical-faith.tistory.com"성경이 말하는 성화는 '점점 거룩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로 구별된 상태'라는 내용이 조금 생소하고 와닿지 않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러 AI에게 이 글의 신학적 타당성을 직접 물어보았는데요. 그 평가 결과를 그대로 공유합니다! 모두 다 복음의 핵심과 구원의 은혜를 선명하게 설명해서, 우리 믿.. 관세 전쟁에 이어 이란을? 무엇이 그를 떠밀었을까 관세 전쟁으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와 질서를 흔들어 놓은 뒤, 갑자기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핵 억제라는 명분은 호르무즈 충격과 그 막대한 손실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이런 일들을 계속 벌이는 걸까요.1. 이스라엘의 압박 — ‘미국 정부가 거절하기 정치적 계산?’ 이스라엘에게 이란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핵 개발, 미사일, 드론, 주변 민병대까지 모두 이스라엘을 겨냥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이란의 군사 능력을 실제로 약화시켜 달라”고 늘 요구해 왔습니다. 미국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핵심 동맹으로 붙잡아야 하고, 미국 정치에서 이스라엘 로비는 선거 자금과 직결됩니다. 여기에 네타냐후의 국내 정치 위기를 전쟁으로 극복하려는 이스라엘의 .. 구원의 서정: 과거·현재·미래의 굴레를 벗고, ‘이미와 아직’의 자유로 거룩해지려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이 이미 나의 거룩함 되심(히 10:10) 후속글앞의 글에서 “성화”라는 용어가 오늘날 잘못 이해되어 왔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많은 사람 성화를 “평생 조금씩 거룩해지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성경의 용례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후대 조직신학이 체계화한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저는 그 배경에는 로마 가톨릭의 과정 중심 성화 개념을 개혁주의가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영향도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성경이 알려주는 성화는 과정이 아니라 신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자기 것으로 구별하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칭의와 성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구원의 순간에 함께 주어지는 은혜입니다.그렇다면 칭의–성화–영화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이제 그 구조를 성경적.. 거룩해지려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이 이미 나의 거룩함 되심(히 10:10) — 성화라는 구원의 단계에서 벗어나, 복음의 생명으로 돌아가기믿음 생활에서 가장 부담되는 말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 ‘성화’ 아닐까요? “구원받았다면 성화의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화가 없으면 그 구원은 가짜다.”얼핏 ‘정통 개혁주의의 경고’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구원을 그리스도의 완전한 십자가가 아닌 내 도덕 수준에 맞춰버립니다. 그러니 구원의 확신은 흔들리고, 마음은 점점 자기검열로 무거워지죠.그래서 오늘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점진적 성화’라는 개념을 성경적으로 다시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성경적 언어로 바꿔보는 대안도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1. 한국 교회가 이해해 온 ‘성화’ — 그리고 그 한계우리가 배운 성화의 정의는 “의롭다 함을 얻은 신자가 .. ‘점진적 성화’ 개념에 대한 신학적·원어적 재검토와 대안 부제: ‘성화’라는 율법적 계단에서 ‘성장’이라는 복음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에게 가장 큰 부담감을 주는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 ‘성화’일 것이다.“참된 구원에는 반드시 성화의 열매가 따른다.” “성화가 없으면 그 구원은 가짜다.”이 말은 얼핏 정통 개혁주의의 준엄한 경고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신자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완전한 십자가가 아닌 자기 내면의 도덕적 수준으로 돌려놓는다.그 결과, 구원의 확신은 흔들리고, 신앙은 율법주의적 자기 검열로 무거워진다.그래서 그동안 구원의 필수 단계처럼 여겨져 온 ‘성화’—특히 일반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점진적 성화'—라는 개념을 성경적으로 다시 점검하고, 보다 성경적인 언어로 교체하거나 재배치할 필요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로봇이 아니라면 혹시 챗GPT?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요즘 여러 가지 인공지능을 사용하다 보니, 우리가 인공지능을 닮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구원에 관해 설명하다 보면, 인간을 너무 단순하게 정의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시키면 움직이는 존재 아니면, 스스로 선택하는 독립된 존재. 하지만 성경이 알려주는 인간은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당연히 로봇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존재도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인간은 인공지능(AI)과 더 닮았습니다. 특히 구원의 흐름—중생, 칭의, 성화—를 따라가 보면 그 유사성이 더 선명해집니다.중생 — 새로운 내부 모델(생각 방식)이 태어나는 순간AI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입력(input)이 들어가는 순.. 이전 1 2 3 4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