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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내 생각

"고난이 진짜로 좋은 건가요?" 성경이 알려주는 '찐' 고난의 의미

고난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단련시키는 도구로 쓰시기에 곧 축복이라고 오해하시기 쉬운데요. 성경은 도리어 고난은 하나님께 죄지음에 대한 처벌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스바냐 1:17)

 

그래서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이냐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이냐고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예수님의 대답처럼 하나님의 진노와는 아무 상관 없이도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경우인데요. 여우 같은 들짐승조차 집이 있겄만 정작 자신은 머리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한탄하실 정도로 고난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사람들, 즉 사탄의 무리가 준 고난입니다.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마가복음 9:12)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적대시하고 없애려 듭니다. 따라서, 죄악된 세상이 예수님께 대항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사람들, 교회 또한 당연히 박해와 고난을 세상으로부터 받습니다.

 

이런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소망을 잃고 낙심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게 해서 믿음을 무너트리는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위로자 되시는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도우시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면서 장차 올 좋은 것을 바라보라고 성경 말씀을 통해 되풀이해서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은 사탄의 무리 곧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도리어 고난 겪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가 된다고요.

 

사도 바울 또한 엄청난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복된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사탄의 무리로부터 받는 고난 자체만 보았더라면, 그는 절망하고 낙심하여 무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어진 고난의 환경 또한 사용하여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그는 받은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 덕분에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잖아요. 바울은 고난이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빌립보서 1:12-14)

 

다행히도, 우리는 복음 전한다고 바울이 겪은 고난을 받지는 않습니다. 단지, 고난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아픔을 '내 고뿔이 남의 염병보다 못하다'는 자기 연민으로 포장하고 과장할 뿐이죠. 하지만, 이 애매한 고난조차도 다가올 미래의 소망을 갖고 견디라고 성경은 격려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베드로전서 2:19)

 

왜냐하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대항한 무리는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시는 고난의 무서운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죠.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베드로전서 3 : 17)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요한계시록 14:10)

 

장차 맺힐 열매를 기대하며, 오늘도 복음의 씨 부리고 물 주는 일을 계속하십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귀중한 씨를 가지고 나아가 우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며 자기의 곡식 단들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베드로 전서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