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도록 글을 둘로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요즈음 로봇청소기는 무척 똑똑해졌습니다.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며, 장애물은 돌아가고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참사는 알아서 피합니다. 배터리가 부족하면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충전도 하고, 백이 먼지로 가득 차면 비웁니다. 하지만, 로봇청소기는 기계일 뿐입니다.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주인이 작동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청소기라고는 하지만,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별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깨끗해도 계속 돌아다니며 청소합니다. 전깃줄 같은 작은 장애물은 인식하지 못하고 밀고 다니다 결국 꼬여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좁은 가구 틈도 멋모르고 들어가 갇힙니다. 한번 끼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비명만 지릅니다. 주인이 풀어 주지 않는 이상, 배터리 수명이 다할 때까지 소리만 지르다 삶을 마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의지 없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설교를 들으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로봇청소기에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미의 자유의지와 소년의 의도
소년이 개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고 있습니다. 개미는 소년의 손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소년이 놓아줄 의도가 없을 때, 개미의 의지대로 이뤄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이는 구원과 관련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할 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예시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충돌할 때는 어찌하나? 꼭 한번, 짚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살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부의 견해
오리게네스는 인간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때만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개미에게는 소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소년이 도와주어야지만 가능하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어거스틴은 더 나아가, 소년의 의지에 비교하여 너무나 작고 미미한 개미의 자유의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유의지를 '어떤 제한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대로,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타락 후에도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그걸 보완하지, 대체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대로라면, 개미가 소년의 뜻과 상관없이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능력을 하나님 수준으로 과대평가한 잘못이기에, 결국 그는 이단으로 정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처음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생각해 본 시기는 예수님 오신 후, 삼사백 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참고로, 그때 한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시절입니다.
2편에서 계속: 자유의지 탐구: 로봇청소기, 개미, 그리고 인간의 의지 (2) (tistory.com)
'일상생활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신과 미신의 덫에서 벗어나 비판적 사고를 키우자 (15) | 2024.09.07 |
---|---|
자유의지 탐구: 로봇청소기, 개미, 그리고 인간의 의지 (2) (0) | 2024.07.12 |
요한 서신 쉽게 읽는 법: 어휘를 파악하라 (0) | 2024.06.21 |
요한 서신의 죄를 이해하면 내용 파악이 쉬워진다고요? (1) | 2024.06.18 |
물의 과학적 특성을 통한 성경 해석의 새로운 접근법? (0) | 2024.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