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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내 생각

요한 서신 쉽게 읽는 법: 어휘를 파악하라

바울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는 하나님과 본체시지만 종의 형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알려줍니다. 반면에,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직접 보고 만졌다고"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말씀을 만지다니요?" 요한 서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휘가 상징하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바울 서신을 읽듯이 문자대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이라고?

그냥 말씀도 아니고 생명의 말씀이라고 한 걸 보면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기 위해 오셨음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요한이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요한에게 교제란,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요일 1:3)

요한과 제자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과의 교제는 오직 대화, 오고 가는 말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죄를 고백? 하나님 이름을 고백 (Confess the Name of God)?

우리말로 고백, 영어로 confess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찬양이나 감사를 나타낼 때 훨씬 더 많이 쓰인 거 아시나요?.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창 29:35)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죄인임을 자백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고, 그 감사를 드리는 고백이 더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교제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죄를 먼저 해결한 후에야 교제가 가능하다는, 즉 법적인 개념의 죄의 자백을 강조한다기보다는 우리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죄,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고 교제해 주심을 알려 줍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요일 1:9 현대인의 성경)

대변자, 예수님! 위로자?

요한에게 죄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고도 합니다(요일 5:3). 또, 설혹 죄를 진다고 하더라도 대신 변호해 주시는 대변자 예수님이 있기에(요일 2:1) 아무 문제가 없다고도 선언합니다.

대변자라는 이 헬라 원어는 요한복음에서는 위로자로 번역되었는데요(요 14:16), 성경에서 예수님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사람은 요한이 유일합니다.

사실 그는 예수님 품 안에 누어서 어리광을 부리던 제자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엄한 선생님이나 대하기 어려운 분이 아니었고 오히려 위로자 편하게 쉬게 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반면, 바울은 예수님과의 첫 만남이 꾸지람이었던 탓일까요? 중보자라는 다소 딱딱한 느낌의 법정(?) 용어로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하하하!

 

예수님이 염소?

요한은 또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도 사용합니다. 염소나 소같이 죄의 대가로 죽임당하는 짐승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담담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기름 부음

물론,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도 부르기도 했습니다(요일 2:1).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뜻인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임을 강조한다기보다는 그냥 예수님의 일반적인 호칭으로써의 예수 그리스도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다음 구절에서는 기름 부음이라는 표현을 예수님께서 보내 주시는 성령님을 가리킬 때 사용하기 때문이죠.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기름 부음' 곧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면서 우리를 가르치고 참된 길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어둠이 한 점도 없고 오직 빛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직접 인도하시니까 우리도 하나님 자녀다운 삶, 한 점의 어두움이 없는 빛의 삶을 사는 게 전혀 어렵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분 안에 거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직접 거하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제이며,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요한은 선언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방법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요일 2:24)

처음부터 들은 말씀을 안에 거하게 하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을 뜻하며, 말씀은 곧 예수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애당초 안에 없었던 이들은 비록 같은 교회의 일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예수를 부인하는 적 그리스도 같은 사람들이었기에(요일 2:18-19) 교회를 떠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저자의 어휘 뒤에 숨겨진 의미를 먼저 살펴보니, 본문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랄 수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삶의 주제인 하나님과의 교제, 생명의 말씀 되시는 예수님의 희생과 성령님의 도우심을 강조합니다.

요한의 독특한 어휘 사용, 상징과 은유적 표현은 요한 서신이 여러 각도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느 관점이든지, 저자가 강조하는 메시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중요성, 우리의 변화된 삶의 필수성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