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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내 생각

"나는 죄 없다" 뻔뻔함에다 던지시는 예수님의 돌덩이

돌에 맞아 처형될 위기에 놓인 여인을 구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보다 깊이 살펴보면 여러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간음한 남녀를 돌로 쳐 죽이는 일이 흔했을까?

모세 율법에 따르면 간음한 남녀는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했습니다(레위기 20:10, 신명기 22:22).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사형을 집행하는 권한은 로마 당국에 의해 제한되었습니다(요한복음 18:31).

"(빌라도)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이를 고려할 때, 종교 지도자들이 실제로 간음한 자를 율법대로 돌로 처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율법대로의 처형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면, 그들은 굳이 예수님께 이 문제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요한복음 8:6). 즉, 이 사건은 단순한 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계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

이러한 곤란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즉시 답을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땅에 무언가를 쓰시며 침묵하셨습니다(요한복음 8:6). 이는 마치 시간을 벌려는 듯한 행동으로도 보이고, 혹시 하나님께 기도로 도움을 구하셨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성경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대답을 요구하자,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입을 여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7)

예수님 태도의 차이

예수님의 답은 평소와 달리 조용하고 간결합니다. 다소 자신 없어 보일 정도로요. 평소 질문을 받으시면,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성경에서 인용하며 자신 있게 답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영생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누가복음 10:26)라고 반문하며 율법의 권위를 강조하셨고,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태초에 창조주께서…”(마태복음 19:4)라며 명확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명확히 제시된 율법 조항들이 있음에도, 도리어 청중들의 양심을 흔드는 방식으로 답하셨습니다.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얼버무림이었을까요? 아니면, 율법의 본질을 밝히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사망에서 구하시는 긍휼, 둘 다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알려 주신 것일까요?

공의와 긍휼의 조화

율법은 분명히 간음한 자를 처형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악을 제하기 위해서라고 이유까지 제시합니다(신명기 22:22).  그렇다면, 훌륭한 하나님의 법을 받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간음이 사라졌을까요? 생명이 끊어지는 우상숭배의 무서운 결과를 알면서도,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답은 뻔합니다. 율법은 죄를 막고 익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하지 못한 것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마태복음 5:17).

죄의 실체를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무리는 결국 하나둘씩 현장을 떠났고,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한복음 8:11)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현재 상황이라면?

만약 이 사건이 오늘날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새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보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많으며, 무지하고 무모한 대중은 여론에 쉽게 휩쓸립니다. 또한, 돈과 권력에 의해 무엇이든 조작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만일 예수님 당시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했다면, 분명 누군가는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죄인을 처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변화의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덕분에, 그 은혜의 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1]

 

[1]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기독교인?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기독교인?

디오드레베는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남보다 더 잘 믿으려는 마음이 커서(요한3서 1:9, "저희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다른 이의 의견은 무시하고 사도 요한의 권면 또한 거부합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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