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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내 생각

하나님을 사랑하자! (요한의 권면)

요한서신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지!"입니다. (요일 4:19)

하나님께서는 죄로 마땅히 죽어야 하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본질상, 죄를 너무도 싫어하시기에, 영원한 사망으로 반드시 없애버리셔야 하는 하나님께서 그 뜻을 접으신 것입니다. 죄에서 구해내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악한 우리를 의로우신 당신처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로만 하시지 않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비밀을 일깨워 주면서, 사도 요한은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9)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의 사랑이 아닌 행동으로의 사랑은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요일 5:3)

주신 계명은 딱 두 개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네 형제를 사랑하라. 참, 쉽죠? 아니면 어려운가요? 사랑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인데 그가 원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이다. 헷갈리나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요 17:21)

앞에서 요한이 알려 준 하나님의 원하심은 '우리와 함께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원하신다고요. 함께 거한다는 것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한 몸이면, 바라보는 시선이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같습니다. 생각이 같으면 나오는 행동도 당연히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곧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형제란 누구인가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요일 5:1) 그들이 곧 같은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함도 같습니다.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시각과 같은 생각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바로 형제간의 사랑을 미리 보고 시를 지었습니다.

"보라,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으며 어찌 그리 기쁜가!" (시편 133:1)

제목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솔로 가수들이 듀엣으로 함께 부른 노래를 모아 놓은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혼자서도 한가락 하는 그들이지만, 서로 한 소절씩 나눠 부르고 자기 성량을 홀로 뽐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여 음량을 조절하고 뒤에서 화음을 조용히 깔아줄 때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습니다.

몸이 약한 아내에게 어떻게든 먹이려고 바쁜 일과 중에도 이것저것 챙겨서 권유하는 남편. 넘치는 사랑의 행동이지만, 먹기 힘든 아내에게는 지나친 부담으로,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하는 맘이 듭니다. 또, 아내가 원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고 다 들어준다는 남편도 있습니다. 시키는 것 다 했으니 만족하리라 여기지만, 미리 알아서 능동적으로 해 주기를 바라는 아내에게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고 '지금 당장'을 고집하는 아내가 야속함에도 불구하고요.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한 마음이 아니기에 상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모르는 탓입니다.

더 많은 '열린 대화'로 서로의 원함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양보해야 아름다운 듀엣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힘이 되는 요한의 격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2)

아직은 형님 되시는 예수님의 참모습을 닮지 못했지만, 다시 뵐 때에는 우리도 온전해질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참고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