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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정석: 성경이 알려 주는 죄의 본질

바른 아빠 2024. 6. 6. 01:10

죄를 제대로 이해하면 믿음 생활이 훨씬 쉬워집니다. 죄는 모든 문제의 시작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씻음을 받은 후에도 죄는 하나님의 자녀 안에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계속 괴롭힙니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마지막 숙제로도 보입니다.

성경의 죄는 단순한 악행 이상의 복합적 개념

국립국어 사전은 '죄'를 '도리에서 벗어난 행위' 그리고 '죄악'은 '죄가 될 만한 나쁜 짓'으로 간단히 정의하므로, 우리는 죄를 잘못된 행위 정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 성경에서 '죄'는 나쁜 행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복잡한 개념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이렇듯, 죄'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처음 사용하셨습니다. 기껏 바친 제물이 거부당해 화가 난 카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대로 했다면 네가 화낼 일이 있었겠니? 앞으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단다. 비록 네 맘이 원하더라도 참거라"

 

'죄'라고 하신 חַטָּאָת(혜타아 H2403)는 그냥 일반적인 의미의 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가 심히 중하다." 다른 구절에서는  עון(아본 H5771)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한글 성경은 이를 죄악으로 번역했습니다: "(소돔)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헤타아의 어원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감'이고 아본의 어원은 '구부러지고 비뚤어짐'이기에 두 단어 모두'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 말에서 죄와 죄악이 같듯이, 히브리어에서도 죄와 죄악은 비슷해 보입니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애가 4:6)

 

하지만, 히브리어에서는 '죄'라는 단어가 잘못된 행위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처벌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창 4:13)

아본이 죄악이 아니라 처벌로 번역되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처벌이 따르기 마련이기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죄가 곧 처벌이고 처벌이 곧 죄라는 걸까요?

 

그래선지 어떤 영어 성경은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라는 스가랴서 구절을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죄(악)은 이러하니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벌로 번역하건 죄로 번역하건, 의미 전달에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 문맥으로 이해해 본 죄의 개념

우리 말도 아닌 히브리 말의 어원을 따지는 거 쉽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창세기 4장 7절의 문맥을 따라 죄를 이해해 볼까요?    

첫째, 죄는 분명히 카인의 행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둘째, '선을 행한다. 선을 행치 않는다'에서처럼 제대로 하고 제대로 하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죄와 연관됩니다. 하지만, 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하신 걸 보면, 카인의 과거 행동(제사를 잘못 드린 것, 동생을 질투한 것, 하나님께 화를 낸 것) 등은 분명히 선하지 않은 행위, 하나님의 길에서도 벗어난 행위로 보이지만, 죄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셋째, 거기서 더 나아간 행동, 곧 어느 선을 넘은 행위는 죄가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넷째, 카인은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그 욕망을 다스리라고 하신 것을 보면, 죄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죄를 선택

카인은 하나님 뜻 대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로 처벌을 받은 것 보면, 당연히 카인은 죄를 지었습니다. 동생을 죽인 것, 곧 살인한 행위가 죄일까요? 아니면, 하나님 뜻을 어기고 자기 원하는 대로 행한 행위가 죄일까요?

그리고, 카인에게는 왜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까요?

죄의 삯은 사망

최초로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벌을 받았잖아요. 이는 분명히 죄입니다. 그 결과,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영적 죽음의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죽음의 상태가 아담의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아담이 받은 벌이 전해진 것이지만, 아담의 죄가 전해졌다는 말도 되기에, 로마서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의 개념입니다.

타고난 본성, 즉 죄성

원죄의 개념을 뒤집어 설명하면, 모든 인간은 죄의 상태로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죄성'을 갖고 태어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원죄라고 부르건 '죄성'이라고 부르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다른 죄를 일으키는 토양이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죄에 대한 처벌로써 받은 저주의 상태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영적 죽음의 상태이므로,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고 악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난 행위는 죄입니다. 그리고, 죄에는 죄에 대한 처벌이 따릅니다.

이렇듯, 죄에 대한 처벌이 곧 죄를 낳고, 그 죄가 또 다른 처벌을 부르는 악순환이 바로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 처한 상황입니다. 이것이 카인이 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원죄와 자범죄 (Original Sin vs Actual Sin)

이렇듯, 나의 죄악된 본성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를 내가 범하는 죄, 곧 '자범죄'라고 부르며 이를 원죄와 구분합니다. 위법 또는 잘못된 행동을 강조하는 히브리 단어는 פשע(페샤 H6588)입니다. 한글 성경이 허물, 잘못, 범법으로 번역하였듯이 내면적인 죄의 상태가 외적인 행위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에서 나오는 범법들로 인하여 (because of their transgressions in all their sins)"로 옮길 수 있는 레위기 16장 16절은 인간의 범법, 허물 잘못 등이 죄의 원인이 아니고 죄의 결과임을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숙제, 죄!

원죄, 인간이 타고난 죄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타고난 거잖아요.

자범죄 또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원죄로 인해서 따라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결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 안의 죄를 없애주신 게 아니고, 예수님의 의로 그냥 덮어서 안 보이게만 하셨습니다. 따라서, 죄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서 나로 하여금 죄를 계속 짓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카인에게도 죄짓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셨고, 사도 요한도 우리에게 빛이신 하나님처럼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라고 권고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어찌 살아야 죄를 피할 수 있을까요? 요한 서신을 공부한 후 답을 찾으면 죄에 대한 후반전 글도 써 보겠습니다.